시어머님의 압력과 무서움은 끝이 나지 않았다. 연세대학교를 다니는 시동생은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나는 벌벌 떨었다. 그 와중에도 남편은 이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. 시어머님 봉양과, 시동생의 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의 결정은 가난한 큰 형의 전적인 부담이기에....... 우리는 대학에 난 자리까지 포기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다 우리의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를 버릴수 없고. 어머님의 소원인 시동생 유학 보내는 것도 내 형제 소원이라 몰라라 할수 없다는 우리의 결정이었다. 그즈음에~~~유사모님은 사르밧이란 선교 모임에 나를 데리고 갔다. 나는 회원이 아니다. 회원 자격도 없다. 단지 내가 좋아하는 사모님을 모시고 가는 그 마음 하나로 따라 갔다. 30여명 모여 예배를 드리..